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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성녀 "에바 페론"의 일대기를 담은 뮤지컬 영화 "에비타(EVITA)"

by 유감독 2023.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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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성녀 에바 페론의 일대기를 담은 뮤지컬 영화 "에비타(EVITA)"

 

 
팝가수 "마돈나"가 아르헨티나의 성녀로 불리던 "에바 페론"을 연기한다는 것을 들었을 때 반신반의 하면서 영화관으로 찾아갔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느낌은 기대 이상이었던 것 같았어요.
하지만, 마돈나는 아르헨티나의 에바 페론의 강성 지지자들에 의해 위협을 받았는데 천박한 팝가수가 에바 페론의 연기를 했다는 이유였고, 그녀는 경호를 위해 밴 4대를 동원하며 이동을 해야 했었죠.
 
오늘은 뮤지컬 영화 에비타(EVITA)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드리고, 에바 페론이 어떠한 삶을 살았기에 취약계층과 노동자들이 그녀에게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는 이유와 그녀가 왜 아르헨티나 몰락의 원인이었는지 냉철하게 파헤쳐 드리도록 해볼게요.
 
1. 영화의 기본정보를 소개 먼저 해드릴게요.
 
    개봉 : 1997.02.07
    등급 : 12세 관람가
    장르 : 뮤지컬/드라마 영화
    국가 : 미국
    러닝타임 : 134분
 
2. 감독/주연

마돈나가 부른 "Don't Cry For Me Argentina" 영화음악 OST도 그때는 인기가 많았죠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3. 영화 소개
 
영화 "에비타"는 1996년에 개봉한 미국 뮤지컬 드라마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앨런 파커가 감독하고, 마돈나, 안토니오 반데라스, 조나선 프라이스 등이 주연으로 출연한 작품으로,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상황과 뮤지컬 요소를 결합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영화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에비타"를 원작으로 하며,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정치인 에바 페론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에비타"는 음악적 요소와 드라마적인 이야기, 정치적인 배경 등이 유니크하게 조합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영화의 사운드트랙 중에서 "Don't Cry for Me Argentina" 등이 널리 알려진 곡이며, 영화 자체도 그 당시 뮤지컬 영화 중에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4. 에바 페론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빈민가의 사생아로 태어나  온갖 역경을 다 겪은 후, 극적으로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퍼스트레이디로서 정치가, 봉사자, 외교가로서 국민의 성녀로 불리게 되고, 30대 초반의 나이에 병으로 짧은 인생을 마감하고, 그녀의 시신은 군부에 의해 빼돌려지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그녀의 시신은 다시 옮겨지게 되는 삶이었죠.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마돈나가 불렀던 "Don't Cry For Me Argentina(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는 아베 페론의 묘비명으로 들었던 적이 있는데 정확하게 그런 건지는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온갖 역경을 겪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가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사생아로 태어나 가난과 싸워야 했던 그녀는 15세의 나이로 시골을 떠나죠. 
도시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시골 소녀가 성공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 놓을 수밖에 없다는 잔혹한 현실을 깨닫고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아름다운 몸을 자기의 앞길을 이끌어 줄 것 같은 남자에게 스스럼없이 관계를 가졌고 실속이 없으면 가차 없이 떠나면서 에바페론은 그렇게 여러 명의 남자 품을 전전하다가 삼류배우로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성공을 향한 물불을 가리지 않는 노력으로 삼류 연극배우로 시작해서 영화배우, 라디오 성우 등으로 영역 확장을 하다가  연예인으로서 이름도 알릴 수 있게 되었죠.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던 에바 페론

 
1944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온 지 10년째
에바 페론은 큰 행운을 잡게 되는데 통일 장교단의 리더 "후안 페론"을 만나게 되는 거죠.
1944년 산후안에서 6000명 이상이 사망하는 지진이 일어나고, 당시 노동부장관이던 후안 페론은 이재민 구호를 위한 기금마련에 앞장을 섰는데, 이때  연예인 자격으로 동참하게 된 에바 페론, 그녀는 만나자마자 서로의 이용가치를 본능적으로 감지하게 되고, 첫 번째 부인을 잃고 독신으로 살던 후안 페론은 에바 페론의 젊음과 미모에 빠져들게 되는데 에바페론은 자신에게 가져다 줄 부와 명예를 한 순간에 알아차리게 되고 그 둘은 그렇게 동거를 시작하게 되죠.
 

결혼한 후안페론과 에바페론(1945년)

 
얼마 되지 않아 반 페론주의자들에 의해 정권을 뺏기고, 후안 페론은 구금이 돼버리게 됩니다. 
이 사건은 뜻밖에도 기회가 되어 돌아옵니다.
에바페론의 숨겨져 있던 재능이 빛을 내기 시작하게 되는데 아름다운 외모가 전부가 아닌 뜻밖에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힘이 그녀에게 있었던 거죠.
 
정치적이고 선동적이고 남을 설득할 줄 아는 그녀는 애인인 후안 페론의 석방운동을 위해 노동자들을 부추겨 총파업을 일으키는 데 성공하게 되는데, 그녀의 출생과 비루한 인생역정이 빈민과 노동자들에게 동질감을 안겨주었고,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연설은 민중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모자람이 없었던 거죠. 
 
이 결과 총파업 10일 만에 후안페론은 노동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석방이 되었고, 그 둘은 1945년 정식으로 결혼을 합니다.
 
1946년 대통령 선거에서 남편 후안 페론의 선거 유세 자리에 동행하며 그녀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죠.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와 확신에 찬 연설은 아르헨티나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 시기에 영화 제목인 에비타(EVITA)라는 애칭이 생기고 국민들로부터 알려지기 시작하죠. 
사실 에바 페론의 인기 덕에 후안 페론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합니다.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대중에게 아부하여 인기 몰이를 하는데, 사실은 대중을 기만하고 인기를 정치적인 입지 확보에만 이용하는 것을 말하는 말입니다. 에바페론과 후안 페론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 포퓰리즘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사람들로 평가되고 있죠. 
 
후안 페론은 대중이 좋아할 만한 정책을 내세우며 정권유지를 도모했는데 그의 뒤에는 빈민가에서 힘들게 살던 에바페론이 있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던 정책들이었는데, 거의가 노동자들의 처우개선, 여성노동자의 인금인상 및 지위, 가족법등 획기적인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게 되는 거죠. 
노동자와 여성 등 약자를 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 혜택을 받는 사람은 거의 없는 허세와 기만의 정권이었죠.
페론 부부를 비판하는 세력은 끊임없는 탄압을 하고, 후안폐론과 군부를 중심으로 부정부패도 만연했었어요.
 

 
에바페론은 아르헨티나 전역을 다니며 복지사업과 봉사활동을 벌이며 성녀로서의 이미지를 자처하였지만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나아지는 것은 없었죠. 국가 돈으로 사치를 부리고, 횡령한 돈은 스위스 은행의 비밀계좌에 입금이 되었는데도 대중들은 페론부부의 사탕발림으로 마비가 되어 있는 상태였죠. 
대중적인 인기를 위해 우상화 작업까지 서슴지 않았죠. 자기들을 위한 글짓기 대회, 찬양, 에바페론 자서전을 교재로 채택하는 동안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던 거죠.
 

 
에바 페론은 9년 간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였죠. 그녀는 1952년 34세의 나이로 척수 백혈병과 자궁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을 때 아르헨티나 대중들은 에바 페론의 죽음을 광적으로 애도를 합니다.
한 달간의 장례식은 국민들이 바치는 꽃으로 뒤덮였죠
 

에바 페론의 죽음 이후 그간에 숨겨왔던 페론 정권의 문제점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무리한 경제정책은 실패로 돌아갔고 끊임없는 인플레이션과 실업, 노동자의 동요 등등 에바 페론이라는 방패를 잃어버린 후안 페론은 문제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결국 군부마저도 후안 페론에게 등을 돌려 군부 쿠데타로 쫓겨나 해외로 망명하게 됩니다.
후안 페론의 망명으로 에바 페론의 시신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게 됩니다
한때는 페론주의의 부활을 염려한 아르헨티나 군부에 의해 에바 페론의 시신이 탈취되어 이탈리아에 숨겨지기도 하죠.
 

 
에바 페론은 죽었고 그녀가 실제적으로 남긴 혜택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생전에 그녀를 좋아했던 수많은 노동자, 여성, 빈민들은 여전히 그녀를 그리워했기에 후안 페론은 죽은 아내 에바 페론의 후광을 등에 업고 십 수년 만에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1973년 다시금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합니다.
이때 에바 페론의 시신도 아르헨티나로 다시 돌아옵니다.
 
에바 페론의 후광은 후안 페론이 재혼한 이사벨 페론에게까지 미쳐 이사벨 페론은 남편 후안 페론이 대통령이 된 후 10개월 만에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대통령 자리에 오르기까지 하죠.
죽은 뒤에도 그 인기 탓에 편히 눈을 감지 못하던 에바 페론의 시신은 죽은 지 24년 만에 레콜레타 공동묘지의 가족 묘역으로 옮겨질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

 
에바 페론, 혹은 에비타. 그녀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로 엇갈리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에바 페론의 인생은 공연 작품거리가 될 만큼 많은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녀가 죽은 이후 아르헨티나와 남미의 여러 나라가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페론주의와 포퓰리즘의 그늘에 놓여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러한 엇갈린 평판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의 많은 대중들은 아직도 에바 페론을 그리워하고 그녀를 성녀로 추앙하고 있죠.
아르헨티나의 시골 농가에는 아직도 에바 페론의 초상화가 걸린 집이 종종 있다고 하니 그녀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만합니다.


에바 페론에 대해 설명을 해드렸는데 마돈나 주연의 "에비타(EVITA)"와 그녀의 삶을 얼마나 충실하게 뮤지컬 영화로 잘 만들었는지 비교하시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영화를 소개를 하게 돼서 기쁘네요. 
 
더욱 좋은 추천영화를 들고 금방 찾아뵙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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